[17_22_375] 장마 시작속 군자산_17.7 山 산행일지_충청

내일 비가 온다고 해서
군자산 산행을 계획했는데
도착 5분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몇 개 않남은 100명산 !!!!
비와 함께 산행도 괜찮네
요즘 비가 너무 내리지 않아서, 
비는 마땅히 내려야 한다만 ^^

비옷과 우산을 준비했으나
우산을 선택했다.

조망은 볼 수 없었으나, 작은 군자산 직전에 있던
삼형제바위, 코끼리 바위....
충분히 보상받을 만한 모양새다.
아마 최대 크기의 코끼리 바위가 아닐까 !

작은 군자산을 지나서 잠깐 보여주는 능선이 잠시나마 힘듬을 잊게해 주었다.
조망없는 군자산을 지나서 소금강 솥밭주차장으로 하산을 하는데
경사가 만만치가 않다.
원래는 이곳이 들머리 였는데, 여차여차하여 역방향으로 산행을 했다.
하산길에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봐줄만 했다.

     = 일 정: '17. 7. 1(토)
     = 날 씨: 장마 시작 첫날
     = 코 스: 하관평~삼형제바위~작은군자산(872m)~도마재~군자산(948m)~소금강 솥밭 주차장
     = 거 리: 10.7km, 6시간(10:33~16:33), 평균 1.9km/h
     = 대성웰빙산악회
        ※ 복정역 1번 출구에 기다리는데, 산악회버스가 출구에 있다가 차를 앞쪽으로 이동시키는줄
           알았는데 그냥 가버리는게 아닌가? 젠장
           중부고속도로 만남의 광장에서 Join함. 택시 12,000원 차회 산행비에서 차감하기로.....









들머리 도착 5분 전부터 비가 내린다
그래도 바람이 불지 않아서 다행
운치도 있네



머리만 젖지 않을뿐





그 유명한 삼형제 바위에 도착
그중 하나인 코끼리 바위
맘모스가 맞을 듯 ^^




또다른 삼형제바위들....





산부인과굴
비만인 사람은 빠져나가기 힘들겠다.





잠시 비가 주춤한 틈을 타서
개인정비를 하고



남군자산에 도착
이곳에서 잠시 길을 잃었다.
작은 군자산에서 도마재까지는 비탐방구간이다.




보라색 나리 한 그루



구름사이로 잠시 하늘이 열렸다.
아마도 지나 온 남군자산쪽이리라





여기 도마재까지
"탐방로 아님"



조망없는 군자산을 찍고
하산을 한다.





볼만한 소나무들이 많이 있었다.
습기를 머금은 버섯향도 느껴지고




두부김치와 막걸리 한잔으로....




소금강 주차장의 모습

BIBA (Big Bang) 모임_'17.6 - 초,중,고,대

참 오래된 모임
중앙대 기계공학과 82~86학번 졸업생들의 모임 !!!

두 친구가 불참하고 6명이 모였다.

한 30여년 된것 같다.
21~2살에 만난친구들인데
50이 넘었으니....

멤버중 1명이 안산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는데
공장 구경겸 한번 쏜다(?)길래 안산에서 모임을 했다.^^

규모도 제법
부럽 .....ㅎㅎㅎㅎ






안산 '다문화거리'를 구경삼아 갔는데
동남아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풍긴다.



듣기만 했던 '오이도'
예전에는 섬이었다는데....




창문 너머로 바다가 보이는
근사한 횟집에서 근사한 저녁을 먹었다.
남해에서 가져 온 '농주' 두병도 말끔히 ^^






에구
중늙은이가 되었으니.....




한참했던 '컵차기'도 한번 해 보구....




나이를 먹은 모양이다.
근처 7080에서 노래도 한 자락씩
예전에는 감히 상상하지 못한 풍경 





정신없이 놀다가
전철이 끊어져 금정역에서 Taxi로 이동했다는......^^;

실미도 Silmido , 2003_'17.7 ● 취미_영화,공연

누적 관객수: 1,108만명

최초의 천만관객 영화 '실미도'

14년전, 지금처럼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없던 시절의
천만 돌파라...
엄청난 기록이다.

자칫 역사속에 뭍힐뻔했던....

지금보니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을 했다.
안성기, 허준호, 정재영, 설경구, 강신일, 임원희, 강성진.......
그리고 강우석 감독

혹독한 훈련 장면들
또 케릭터에 맞게 몸을 만들었던 것 같다.
몸들이 다 좋네 ^^

"비겁한 변명입니다"
"날 쏘고 가라"
"무장공비 아님니다. 
 그새끼들이 왜 무장 공비야 대한민국 특수부대 684부대원들이라니까?





줄거리

684 북파부대 | 이름도 없었다... 
존재도 없었다... 
살려둘 이유도 없었다! | 
32년을 숨겨운 진실... 이제는 말한다!

{영화 <실미도>는 1968년 창설된 ‘실미도 684부대’에 관한 영화이며, 영화 속 훈련병들의 출신 성분이나 상황 설정이 

과거 혹은 현재의 북파공작부대나 북파공작원과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북으로 간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사회 어느 곳에서도 인간대접 받을 수 없었던 강인찬(설경구 분) 

역시 어두운 과거와 함께 뒷골목을 전전하다가 살인미수로 수감된다. 그런 그 앞에 한 군인이 접근, 

'나라를 위해 칼을 잡을 수 있겠냐'는 엉뚱한 제안을 던지곤 그저 살인미수일 뿐인 그에게 사형을 언도하는데... 

누군가에게 이끌려 사형장으로 향하던 인찬, 

그러나 그가 도착한 곳은 인천 외딴 부둣가, 그곳엔 인찬 말고도 상필(정재영 분), 찬석(강성진 분), 원희(임원희 분), 

근재(강신일 분) 등 시꺼먼 사내들이 잔뜩 모여 있었고 그렇게 1968년 대한민국 서부 외딴 섬 '실미도'에 기관원에 

의해 강제차출된 31명이 모인다.


영문 모르고 머리를 깎고 군인이 된 31명의 훈련병들, 그들에게 나타난 의문의 군인은 바로 김재현 준위(안성기 분), 

어리둥절한 그들에게 "주석궁에 침투, 김일성 목을 따 오는 것이 너희들의 임무다"는 한 마디를 시작으로 냉철한 조중사

(허준호 분)의 인솔하에 31명 훈련병에 대한 혹독한 지옥훈련이 시작된다.


'684 주석궁폭파부대'라 불리는 계급도 소속도 없는 훈련병과 그들의 감시와 훈련을 맡은 기간병들...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자폭하라!"는 구호하에 실미도엔 인간은 없고 '김일성 모가지 따기'라는 분명한 목적만이 

존재해간다.

{조국의 부름에 목숨을 걸고 응답한 청년 기간병들과 분단 조국이 내몰았던 사지의 땅에서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울부짖으며 죽어간 서른 한 명 훈련병들의 영혼 앞에 이 영화를 바칩니다}



사형수들을 회유~~~

어차피 죽을 몸




실미도에 다다르기전에 타고온 배를 폭파시킨다.

살기위해서는 섬까지 헤염쳐 살아야 한다.






훈련이란

매일  이어지는 매질과 혹독한 훈련뿐







갈등도 있었고





점점 살인 병기가 되어 간다.





드디어 D-day




그러나 

상황이 바뀌어 그들의 계획이 취소가 되고

무작정 기다린다.




제작노트

1971년 8월 23일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인천시내버스를 타고 나타난 군인들이 군경합동진압군과 총격전을 벌이다 자폭한 

사건이 발생한다. 처음 당국은 '무장공비'라고 했다가 다음날 '군 특수범들의 난동사건'으로 정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정부가 

실미도에 만든 '북파특수부대'였다. 정부는 왜 그들을 거듭 부정했을까? 왜 그들은 목숨 걸고 탈출해 집단 자폭했을까? 

그 진실찾기를 향한 국민적 염원이 2003년 스크린에서 구현된다!


우리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면서도 역사 속에서 지워져야 했던 '실미도 사건'. 알아서 괴로웠고 '설마...'하며 상상치도 

못했던 그 숨겨진 이야기가 드디어 공개된다. 한국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실미도 684부대'를 소재로 한 '실미도 프로젝트'는 

근 10여년동안 '영화계의 뜨거운 감자'와도 같은 것이었다. 32년을 기다려 온 진실, 그 목격자이자 희생자였던 684부대 31인의 

훈련병들이 겪은 3년간의 극비실화를 쫓는 영화 <실미도>. 

2003년 12월, 거부할 수 없는 31명의 드라마틱한 운명과 드디어 조우한다.


'실미도사건'은 무엇인가?

1971년 8월 23일 이른바 '실미도 난동사건'으로 명명된 그 날의 사건에 대해 언론은 그들이 정말 '북파부대'라면 건국 이래 최대의 

파란을 몰고 올 사건이었기에 취재에 열을 올렸으나 어느 매체도 성공할 수 없었다. 사건 발생 3일만에 정래혁 국방장관, 김두만 

공군참모총장 등 정부와 군 관계자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고 살아남은 4명의 훈련병들도 바로 사형되었다. 그렇게 '실미도 사건'은 

역사 속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듯 했으나 '국민의 정부' 이후 HID, AIU 등 국군 산하 첩보부대들의 존재와 인권에 대한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실미도사건' 에 대한 재조명은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부대의 공식명칭은 '오류동 정보부대'로 불리던 공군 제 7069부대 소속 2325전대 209파견대. 1968년 1월 21일 '박정희 모가지를 따러'

31명의 무장공비가 청와대 앞까지 침투했다 무산된 '1.21 김신조 사건'에 놀란 박정희 정권과 중앙정보부가 계획한 보복조치로 창설

되었다. 사형수, 무기수, 일반 제소자들이 포함된 사회 밑바닥 계층을 포섭, 작전성공 시 모든 형벌 취소 및 전과기록 말소 등 정부로

부터 새 삶을 보장 받는 조건이었다. 1968년 4월에 만들어져서 '684부대'로 불렸던 이 부대는 김신조부대와 똑같이 31명으로 구성

됐으나 훈련도중 사고, 탈출, 처형 등으로 7명 사망, 결국 24명이 최후까지 살아 남는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북파되어 주석궁에 

침투 '김일성 목을 따오는 것'이었다.


실미도에 훈련은 없었다. 뛰고 또 뛰는 훈련병들 뒤엔 언제나 실탄을 장전한 기간병들이 있었던 것. 그들은 인민군 말투에 인민군가,

인민군 제식훈련 등 철저하게 인민군식 훈련을 받았다. 처음엔 오합지졸이었던 훈련병들은 발꿈치로 날아드는 실제사격과 단체구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지옥훈련을 통해 단 3개월만에 북파 가능한 인간병기가 되었다. 

부대가 창설된 지 4개월만에 첫번째 실전명령이 떨어져 바닷길로 북에 침투를 시도하지만 상부의 저지로 중도무산된다. 이후 3년 

4개월간 '출정의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들의 긴긴 기다림은 시작된다.


그 사이 섬 밖 육지의 상황은 처음 실미도부대를 창설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국제 데땅트와 함께 남북 화해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하고 중정부장이 교체되는 등 급격한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어느덧 '구 시대의 유물' 이자 '유령부대' 가 되어 버린 실미도 684부대, 결국 그들을 제거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인간병기로 길들여진 실미도훈련병들에게 일반사병들이었던 담당 기간병들은 속수무책이었고, 단 십여분만에 실미도를 

접수한 훈련병들은 인천으로 상륙, 송도외곽에서 버스를 탈취, 서울로 향한다. 전군 비상경계령이 발동된 가운데 이들은 진압군과 

교전 끝에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전원 자폭이라는 최후를 선택한다.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신속히 이 사건을 종결지었다.


왜 함께 청와대로 향했는가? 

왜 전원자폭 했을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까?


당시 훈련병들이 탈취한 버스에는 민간인 승객들이 타고 있었고 이들은 묘한 증언을 해 왔다. 

훈련병들이 청와대로 가자고 했다는 것, 인질인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했다는 것, 그리고 분명 버스 안에서 훈련병들이 

먼저 총을 쏘진 않았다는 것. 이는 반대로 인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압군은 사격을 가했다는 얘기다. 

그들은 왜 함께 청와대로 가려고 했을까? 왜 함께 전원 자폭의 최후를 선택했는가? 북파가능한 인간병기들이 뿔뿔이 흩어져 

개별행동을 했다면 살아 남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들은 무언가 '목숨걸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던 것일까? 

32년간 숨겨져 온 진실... 이제 말할 수 있게 된 지금, 그러나 그들은 사라지고 없다.


실미도 사건 일지

1971년 8월 23일 오전 6시, 24명의 훈련병 탈출 행동 개시

6시 15분 실미도-공군부대간 통신두절. 24명의 기간병 중 6명만이 생존. 

교육대장 김순응 준위 외 12명 사살, 6명 익사. 총 18명 기간병 희생.


낮 12시 20분 탈출 훈련병 24인 인천 독배부리 해안 상륙

12시 53분 첫번째 버스탈취, 서울로 향하다, 인천 송도역 삼거리, 대기중이던 육군 24명과 총격전 2명 중상

13시 10분 1차교전 - 인천 옥련고개

13시 20분 두번째 버스탈취, 인천 주안사거리 - 간석동고개

13시 30분 인천 소사 삼거리 경찰관 사살

13시 38분 인천 신양촌 검문소 경찰관 사살

14시 15분 서울 진입,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버스운전사 탈출

14시 25분 마지막 교전, 서울 대방동 유한양행 앞

      "확실히 안에서 먼저 쏘진 않았다. 밖에서 먼저 쐈다" - 사건당시 버스승객 증언


일부 수류탄 자폭, 4명 생존

8월 25일 정래혁 국방장관 경질

1972년 3월 10일 오전 10시경, 4명의 생존자 사형 집행

1972년 7월 4일 남북 7.4 공동성명 합의, 평화통일 협약, 남북 무장도발 금지 조약 체결



모처럼의 구미(Solar BD) 출장_'17.6 ★ 4) Vic21추진실_여의도

몹씨 더운(Solar) 날
구미를 찾았다.

'12년도에 Vic21교육한다고
더운 강의강에서 교육을 했던 기억이 난다.

KTX 정거장(구미김천역)이 거지 같은 위치에 있어서
새마을이나 무궁화호를 타야 한다.
안 그러면 시간이 많이 걸릴뿐만 아니라
택시비가 어마 무시하게 나온다.

새마을호로 이동....




예전 생각해서
찾아가 봤는데,
느낌이 예전만 못하네 ^^;




엄청 더운 날씨다.
구미역 커피숍에서.....




회의가 길어져서
'돈물냉면'으로 간단히 저녁식사를.....



대전에서 KTX로 환승한다.
서울에 30분 정도 먼저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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