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학선의사 의거터 ♣ 국내여행_유적지 찾아서



송학선(宋學先.1893.고종 30∼1927.11.10), 항일독립운동가


창덕궁 돈화문 앞~~~~


서울에서 출생하여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아현북리(阿峴北里: 지금의 서울 아현동)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성품이 과묵하고 남과 언쟁을 하지 않았으며, 청결한
것을 좋아하였다 한다. 가세가 극빈하여 보통학교도 중도에 중단하고 13세 때 가족이
이산하여 거리를 헤매는 방랑자가 되기도 하였다.


1909년 남대문로에 있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오쿠다농구회사(奧田農具會社)의 고용인으로 일하게
되고, 아버지 역시 인쇄공으로 일하게 되어 한가족이 모이게 되었다. 그러나 7년 뒤 그는 각기병
으로 다시 실직하게 되었다. 그는 일본인 밑에서 고용살이하면서 일제에 대한 원한이 쌓여갔다.
즉, 사회적ㆍ민족적으로 항일의식에 눈뜨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이토(伊藤博文)를 사살한
안중근(安重根)을 숭배하고, 자기도 총독 사이토(齋藤實)를 사살하기로 결심하였다.


1926년 3월부터 잠시 사진관에서 일하면서 양식도(洋食刀)를 손에 넣게 되었는데, 그 칼을 품에
품고 과자행상을 가장하여 사이토의 척살을 노리고 있었다. 그해 4월 26일 순종이 죽자, 사이토가
조문하기 위하여 창덕궁으로 올 것을 기대하고 4월 28일 금호문(金虎門)앞에 나아가 대기하였다.
오후 1시 30분경에 일본인 3명이 탄 자동차가 금호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비호같이 자동차에
뛰어올라 이들을 찔러 살해하고 달아났다.


그러나 이들은 총독이 아니라 경성부회 평의원인 다카야마(高山孝行)ㆍ사토(佐藤虎次郎)ㆍ이케다
(池田長次郎) 등이었다. 그는 추격해 오는 한국인 순사 오환필(吳煥弼)을 찌른 후 휘문학교(徽文學校)
교문 앞에서 체포되어 1926년 11월 10일 사형이 확정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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