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1/2)_상원사_'10.1.16 ♣ 국내여행_유적지 찾아서



상원사 (上院寺)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에 있는 사찰. 오대산 중대(中臺)에 있다.

705년(신라 성덕왕 4) 보천(寶天)과 효명(孝明) 두 왕자가 창건하여 진여원(眞如院)이라 하였다.
그 뒤 보천은 오대산을 나라를 돕는 신행결사도량(信行結社道場)으로 만들 것을 유언하였고, 그
유언에 따라 진여원에 문수보살상을 모시고 낮에는 《반야경》과 《화엄경》을 독송하게 하였으며
밤에는 문수예참(文殊禮懺)을 행하게 하였다. 고려 말 이 절은 극도로 황폐해졌으며, 이때 나옹(懶翁)의
제자 영령암(英靈庵)이 오대산을 유람하다가 터만 남은 상원사를 보고 중창(重創)의 원을 세웠다.
판서 최백청(崔伯淸)이 재물을 희사하여 1376년(우왕 2) 공사에 착수하여 다음해 가을에 낙성을 보았다.

조선시대에는 척불정책으로 전국의 사찰이 황폐되었지만, 오히려 이 절은 크게 발전하였다.
1465년(세조 11) 상원사를 중창하기 시작하여 1466년 낙성식을 가졌는데, 크게 동서로 나눈 가람형식에
각각 상실(上室)을 지었다. 남쪽에는 5칸의 누각을 짓고 범종을 안치하였으며, 동쪽에는 나한전(羅漢殿),
서쪽에는 청련당(淸蓮堂)을 지었다.

1946년 실화(失火)로 건물이 전소되었으나 1947년 중창되었고, 6·25전쟁 때에는 이 절에서 수행하던
고승 한암(漢巖)에 의해 월정사 등의 다른 오대산 사찰과는 달리 전화를 면하였다.






석조 고양이상

병을 고친 이듬해 봄, 세조는 다시 그 이적의 성지를 찾았다. 상원사에 도착한 왕은 곧바로 법당으로 들어갔다.

막 예불을 올리는데 어디선가 별안간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세조의 곤룡포 자락을 물고 자꾸 앞으로 못 가게
잡아당기는 것이 아닌가. 이상한 예감이 든 왕은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병사들을 풀어 법당 안팎을 샅샅이 뒤지게
했다. 아니나 다를까. 불상을 모신 탁자 밑에 세 명의 자객이 세조를 시해하려고 시퍼런 칼을 들고 숨어 있었다.
그들을 끌어내 참하는 동안 고양이는 벌써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하마터면 죽을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를 위해 세조는 강릉에서 가장 기름진 논 5백 섬지기를 상원사에 내렸다.
그리고는 매년 고양이를 위해 제사를 지내주도록 명했다. 이때부터 절에는 묘답 또는 묘전이란 명칭이 생겼다.
즉 고양이 논, 또는 고양이 밭이란 뜻. 궁으로 돌아온 세조는 서울 근교의 여러 사찰에 묘전을 설치하여 고양이를
키웠고, 왕명으로 전국에 고양이를 잡아 죽이는 일이 없도록 했다. 최근까지도 봉은사 밭을 묘전이라 부르는 이유도
이에 기인한다.

또 지금도 상원사에 가보면 마치 이 전설을 입증하는 듯 문수동자상이 모셔진 청량선원 입구 계단의 좌우에는 돌로
조각한 고양이 석상이 서 있다. 속설에 의하면 「공양미」란 말도 고양이를 위한 쌀이란 말이 변하여 생겼다는 일설도
있다.







상원사동종(國寶제36호)

신라 성덕왕은 선왕(先王)을 위하여 봉덕사를 창건하고 인왕도량(仁王道場)을 베풀어 민생을 구제하기에
애썼다. 성덕왕 24년(725)에 극히 아름답고 음향 또한 청량한 범종(梵鐘)을 조성하였으니 이 종이 이른바
상원사 동종이라 부르는 것이며, 현존하는 종 중에서 가장 오랜 것이다.

그 높이는 167㎝이며, 입지름은 91㎝가 된다.

종의 꼭대기 부분에는 정교하게 무늬를 조각한 용뉴(龍紐)와 음관(音管)이 있고, 몸체 위 아래에는 유려한
무늬를 새긴 띠가 돌려졌으며 윗 띠에 붙여서 4개처에 유곽(乳廓)을 두고 그 안에 각각 연꽃 봉오리를 새긴
유두(乳頭) 9개씩이 솟아있다. 또한 종신(鐘身)의 공간에는 양쪽면에 각각 공후와 생황을 연주하는 비천상
(飛天像)이 무릎을 세우고 구름 위를 나는 모습을 두드러지게 새겨 넣었는데 천의(天衣)자락과 영락(瓔珞)이
경쾌하게 흩날린다.






동종 누각을 새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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