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1/3)_대적광전, 비로자나불삼존상, 국사단_'10.7 ♣ 국내여행_유적지 찾아서

해인사

팔만대장경판(八萬大藏經板)을 모신 법보사찰(法寶寺刹)로, 불보사찰(佛寶寺刹)인 통도사(通度寺),
승보사찰(僧寶寺刹)인 송광사(松廣寺)와 더불어 한국 3보사찰의 하나이다.

802년(신라 애장왕 3) 순응(順應)이 창건에 착수하였고, 그가 죽자 뒤를 이어 이정(利貞)이 완성하였다.
해인사의 해인은 창건주인 순응이 《화엄경》에 나오는 <해인삼매(海印三昧)>에 근거를 두고 이름지은
것으로, 삼라만상이 고요한 바다에 비치듯이 번뇌가 끊어진 부처의 정심(定心)에 만법의 실상(實相;眞理)이
명료하게 비친다는 뜻이다. 해인사는 화엄의 철학과 사상을 천명하고자 이루어진 도량으로,
이러한 창사 정신은 계속 이어져 왔다.

신라 말기 승통(僧統)인 희랑(希朗)이 불법을 크게 일으켰으며, 고려 건국 후에는 국찰(國刹)로 지정되었다.
또 의천(義天)이 《속장경(續藏經)》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1481년(성종 12)부터 8년간에 걸쳐 사찰규모를
확장하였는데, 이는 창건 당시의 규모보다 더 웅장한 것으로, 임진왜란의 화를 면하고 보존되어 오다가 숙종
이후 여러 차례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조선 말기에 중건한 것으로 50여 동(棟)에 이르며, 말사로는 가야산 내 암자 15개를 비롯해
모두 100여 개 사찰이 있다. 남아 있는 건물 가운데 국보 제52호 해인사장경판전(장경각;藏經閣)은 국보 제32호
해인사대장경판과 해인사고려각판(국보 제206호·국보 제734호)을 모신 2개 판전으로, 경판 보관을 위한 가장
과학적이고 완전무결한 걸작으로 인정받아 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 가운데 대장경판은 원래 강화도 선원사(禪源寺)에 있던 것을 지천사(支天寺)로 옮겼다가 1398년(태조 7)
해인사로 옮겨온 것이다.

보존되어 있는 문화재로는 해인사석조여래입상(보물 제264호), 해인사원당암다층석탑 및 석등(보물 제518호),
해인사목조희랑대사상(보물 제999호), 해인사길상탑(보물 제1242호), 해인사홍제암(보물 제1300호), 해인사사명
대사부도 및 석장비(보물 제1301호), 해인사대적광전(경남유형문화재 제256호) 등이 있다.


海東第一道場



일주문에서 본전에 이르는 길~~~





해인도海印圖

600년도에 의상대사가 만들었단다
입구와 출구가 같은........ 
앞 마당에 해인도 문양의 미로를 만들어 놓고 수행을 하도록 하고 있다.






대적광전 大寂光殿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해인사는 통일신라 애장왕 3년(802)에 지어졌다. 중심 법당인 대적광전은 2층
건물로 비로전이라 불리다가, 조선 성종 19년(1488)에 다시 지으면서 대적광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뒤 여러 차례의 화재가 있어 옛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고 지금의 건물은 순조 17년(1817)에 다시 지은 것을
1971년 대폭 수리한 것이다.

앞면 5칸·옆면 4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에는 중앙의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다.  이 불전(佛殿)은 해인사(海印寺)를 창건하던 신라(新羅)
애장왕(哀莊王) 3년(802)에 순응(順應)·이정(利貞) 두 스님이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2층으로 된 큰 건물로
비로전(毘盧殿)이라 하였다. 그후 조선(朝鮮) 성종(成宗) 19년(1488) 인수(仁粹)·인혜(仁惠) 두 대비(大妃)의
지원으로 학조대사(學祖大師)가 중창할 때 대적광전이라 개명(改名)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의 화재(火災)로
옛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현재의 건물은 순조(純祖) 17년(1817) 제윌스님이 경상관찰사(慶尙觀察使) 김노경
(金魯敬)의 후원으로 세웠던 것은 1971년 이지관 주지(李智冠住持)가 개금불사(改金佛事)와 아울러 대폭 중수
(重修)한 것이다. 
불전(佛殿)의 주불(主佛)과 좌우의 화관(華冠)을 쓴 문수(文殊)·보현(普賢)보살상은 은행나무로 조성한 것인데,
금당사(金塘寺)에서 고종(高宗) 광무(光武) 원년(元年)(1897) 범운(梵雲) 스님이 옮겨 모셨다고 한다. 










해인사대적광전비로자나불삼존상海印寺大寂光殿毘盧舍那佛三尊像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된 경남 합천 해인사의 대적광전에 있는 불상이다. 대적광전은
팔만대장경을 지니고 있는 법보사찰(法寶寺刹) 해인사의 중심법당이다. 불상은 원래
금당사(金塘寺)에 있었던 것이며 고종 1년(1897)에 현재 위치로 옮겨서 모시고 있다.


본존불은 머리에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이마 위에는 반달 모양이
표현되어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넓게 파인 가슴에는 옷자락을 집어
넣고 있고 양 다리에는 물결 모양의 옷주름이 표현되어 있다. 손은 왼손 검지를 오른
손으로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비로자나불이 취하는 일반적인 손모양이다.


본존의 왼쪽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오른쪽에는 실천을 통한 자비를 상징하는
보현보살이 위치하고 있다.


자세가 장중하고 온화한 가운데서도 위엄이 갖추어진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국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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