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_36]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소요산(1/3)_일주문~공주봉_'10.9 山 산행일지_경기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교통이 불편해서 찾지를 못했었는데
숙제를 마친 기분이네.....친구도 만나 보구

신라29대 무열왕의 딸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사이에 대유학자가 된 설총까지
낳은 로멘스가 서린 곳....소요산

높지는 않지만 칼바위 능선, 선녀탕 계곡은 나름 발달된
암릉을 가지고 있다.  단풍나무가 많아서 가을에 찾아 오면 절경일듯 하다.
나이든 노인분들이 많이 눈에 띈다.

   = 일시: 2010.9.15(수)  
   = 날씨: 시계 좋음, 가을 날씨
   = 코스: 소요산역=> 자재암일주문=> 공주봉=> 의상대=> 나한대=> 상백운대
             => 선녀탕=> 자재암일주문=> 소요산역
   = 소요시간: 4.5시간(11:40~16:10), 10Km





입구에 요석공원이라고 되어 있는데 별다른 시설물은 없고
넓은 공간만이 형성이 되어 있다.
이곳에서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의 설이 서린 곳



소요산 매표사
사람들 그냥 통과하길래 따라 갔더니  "아저씨 요금 내세요"
"아니 앞 사람들 그냥 들어 가는데...?"
"네....경로분들이세요..."
허걱.
1,000원....자재암도 수리중이어서 볼 것이 없더만



한적한 입구...
좌우가 다 단풍나무다.



비가 내려서 그런지 계곡에 물도 흐르고.....



자재암 일주문
온통 보수 작업중이네....
요석공주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설총을 이곳까지 데리고와
자재암에서 수행중인 원효대사를 향해 예를 갖추게 했단다.



일주문에서 공주봉 방향으로.....
이름 참 촌스럽다.



구 절터
자재암에서 수행하던 원효대사를 기리며
이곳에 절을 만들고 요석공주가 머물렀다고 한다....
잡초만 우거져 있다.



공주봉에 이르는 길이 참 돌이 많다.
군데 군데 돌탑들이 많이 쌓여 있다.
아마도 만들어 가는 중인듯



기도터
누가 기도를 한다는 것이지?



공주봉 8부 능선에서 바라본
소요산 최고봉 의상대~~~~~~





공주봉 정상
특별한 표시는 없다......





군사도시 답게 여기저기서 총소리며 대포소리들이 들려 온다.
아마도 동두천 방향같은데,
바로 아래가 군부대 사격장 모습이다.

덧글

  • 지성의 전당 2018/08/28 22:40 # 답글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원효대사에 대한 글이 있어서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저자 진경님의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 블로그에 더 많은 내용이 있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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