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_백담사, 목조아미타불좌상(보물1182호), 봉정암, 오세암, 영시암_'10.10 ♣ 국내여행_유적지 찾아서

백담사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647년(진덕여왕 1) 자장이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한계령
부근의 한계리에 절을 세우고 한계사라고 하였다. 690년(신문왕 10년)에 불타버려 719년(성덕왕 18)에 재건하였
는데, 《백담사사적기》에 이때의 중건과 관련된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785년(원성왕 1)에 다시 불탔으며, 790년에 한계사터 아래 30리 지점으로 옮겨서 중건하고 절 이름을 운흥사라고
하였다. 그러나 984년(성종 3)에 다시 불타버려 운흥사지 북쪽 60리쯤 되는 곳으로 이건하고 987년 심원사로 개명
하였다.

이때부터 조선 초기까지 전승되다가 1432년 4번째 화재로 다시 폐허가 되었다. 그뒤 2년 만에 심원사지 아래 30리쯤
되는 곳에 법당과 요사채를 세우고 선구사라 하였으나 1443년에 불타버렸고, 1447년 옛 터의 서쪽 1리쯤 되는 곳에
다시 절을 세워 영축사라 하였다. 그러나 1455년 6번째 화재로 불에 타고 이듬해 옛 절터의 상류 20리 지점으로 옮겨
중건하여 백담사라 하였다.

1772년(영조 51) 다시 불타버리자 1775년 최붕, 태현, 태수 등이 초암을 짓고 6년 동안 머물면서 법당과 향각 등의
건물을 중건하고 심원사라 하였다가 1783년(정조 7년)에 절 이름을 다시 백담사로 바꾸었다. 근대에 이르러 한용운
머물면서 《불교유신론》, 《십현담주해》, 《님의 침묵》을 집필하였다.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7년에 재건
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중심 법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령각, 화엄실, 법화실, 정문, 요사채 등이 있으며,
뜰에는 삼층석탑 1기가 있고 옛 문화재는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부속암자로는 봉정암, 오세암, 원명암 등이 있다.



백담사 가는길~~~~~~~~





백담사 3층석탑





백담사 목조 아미타불좌상(보물1182호)

이 불상은 특히 조성연대를 알려주는 발원문(發願文)과 많은 복장물이 발견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당시 복장에서 불상신조성회향발원문 1매와 다라니서입회향발원문 1매, 홍참의 다리연화방거 한글
발원문 1매, 자식점지한글발원문1매와 만자소화(卍字小花)문 노란색단삼회장 저고리 1점, 유리와
수정 등의 파편수백점을 보자기에 싼 복장물 1괄이 확인됐다.

특히 영조 24년(1748)에 만들어진 것으로 만자(卍字)를 서로 연결한 문양과 함께 국화무늬를 단순화한
소화문을 도안으로 사용한 노란색단 삼회장저고리는 조선시대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로 꼽힌다.
저고리 주인공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깃과 곁마기의 만자운용문 자단색으로 보아 궁중의 왕족이거나
왕실과 관계된 신분으로 추측된다.


[펌]




봉정암

신흥사의 말사인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대표적 불교성지인 오대적멸보궁() 가운데
하나로 불교도들의 순례지로서 유명하다. 대청봉 산마루 가까이에 있는데, 해발고도 1,244m 지점에
있어 백담사와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에 이르기 위한 산행은 매우 힘겹다.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정좌하고 있는 봉정암은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가섭봉·아난봉·기린봉·할미봉·독성봉·나한봉·
산신봉이 감싸고 있다.

현존하는 전당은 법당과 요사뿐이다. 법당 옆 바위 위에는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된 봉정암
석가사리탑이 있다. 고려시대 양식을 따른 이 오층석탑은 부처의 뇌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하여 ‘불뇌보탑’
이라고도 부른다.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자장()이 중국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
하여 창건하였다. 원효·보조 등 여러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677년(문무왕 17) 원효가, 1188년(고려
명종 18) 지눌이 중건한 것을 비롯하여 6·25전쟁 이전까지 7차례에 걸쳐 중건하였다. 6·25전쟁 때 화재로 자칫
하면 명맥이 끊어질 뻔하였다.





봉정암 불뇌보탑

다른 사찰의 여느 탑과 달리 기단부가 없고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바로 오층의 몸체를
얹었다.  이 자연암석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1면에 4엽씩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부처가 정좌
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맨 위에는 연꽃인 듯한 원뿔형 보주가 높이 솟아 있다.




영시암

영시암은 조선조 숙종때에 장희빈이 낳은 아들을 원자로 책봉한것에 반대한 노론파의 후손
김창흠이 어지러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전국 명산 순례중 산과 물에 반해서 이곳 수렴동
계곡에 수도를 하겠다고 지은 암자라고 합니다.
그후 6.25때 완전히 소실되어 터만 남았던 것을 도윤스님이 중창했단다.







오세암 五歲庵

강원도 인제군(麟蹄郡) 북면(北面) 용대리(龍垈里) 설악산 백담사(百潭寺)에 딸린 암자.
643년(신라 선덕여왕 12) 자장(慈藏)이 창건하여 관음암(觀音庵)이라 하였고, 조선시대 1548년(명종 3)
허응(虛應)이 중건하였다. 1643년(인조 21) 설정(雪淨)이 중건하여 오세암으로 개칭하였으며 1888년
(고종 25)에는 백하(白下)가 중건하였다.
이 암자에는 설정이 월동준비로 암자를 떠난 뒤 4살 된 조카가 관세음보살의 보살핌으로 한 해 겨울을
혼자 보냈다는 <관음영험설화>가 전해지며, 이때부터 이름을 오세암이라 고쳤다고 한다. 수선도량
(修禪道場)과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며, 많은 고승들이 주석(駐錫)했던 곳이기도 하다. 특히 김시습(金時習)·
한용운(韓龍雲)이 머물면서 《십현담(十玄談)》의 주석서를 쓴 곳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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