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칠장사(1/2)_혜소국사비(보물488호),봉업사석불입상(보물983호)_'11.1 ♣ 국내여행_유적지 찾아서

칠장사七長寺
636년(선덕여왕 5)에 자장율사가 창건했고, 고려초 혜소(慧炤:927~1054)가 현재 비가 있는
자리에 홍제관(弘濟館)을 짓고 수도를 할 때 7명의 악인을 교화제도(敎化濟度)하여 득도의 경지에
이르게 했기 때문에 산이름을 칠현산(七賢山)이라 했다고 한다.
1014년(현종 5) 왕명으로 절을 크게 중창한 뒤에도 여러 차례의 중수와 중건이 있었다.
1674년(현종 15)에는 어떤 세도가가 산을 빼앗아 승려들이 흩어지는 비운을 겪었으나 초견(楚堅)이
절을 다시 찾아 중수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원통전·영각·명부전·천왕문·요사채 등이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인목대비의 친필
족자(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4호), 대웅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4호), 천왕문 안에 있는 소조사천왕상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15호), 혜소국사비(慧炤國師碑:보물 제488호), 삼불회괘불탱(보물 제1256호)이
있다. 이밖에 절 입구에 고려시대의 철제 당간지주와 부도 14기 등이 있다.



칠장사 전경



사천왕문
흙으로 빚은 소조상으로. 영조2년(1726)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단다.





대웅전
칠장사의 주불전으로 석가모니불을 봉안한 전각이다.
사적기에 의하면 조선 숙종 20(1694)에 세도가들이 사찰을 불태운 후 숙종 30년에 승려 석규가 대웅전을 이건
하였다고 한다. 영조 12년(1736)에는 승려 설영이 중수하였고 순조 28년(1828)에는 승려 완진이 다시 지었다.
이후 철종 8년(1857)에는 지붕이 수리되었고 최근 1982년에는 해체 수리되었다.
 
대웅전은 안마당 서북쪽의 높은 석축 위에 동향으로 위치하고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 맞배집이다.
기단석축은 장대석을 5단 가량 쌓은 것인데 갑석과 계단소맷돌을 갖추었고 초석은 방형으로 윗면에 둥근 주좌를
돋을새김한 것으로 고려 초기까지도 올려볼 수 있다. 내부 중앙에는 불단 위에 석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이 불전은 기둥과 지붕이 만나는 곳에 사용된 공포에 연봉과 봉황머리가 장식된 형태와 자연 형상의 기둥과 보
등의 치목(治木)수법 등에서 19세기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칠장사혜소국사비(보물488호)
칠장사에 있는 고려시대 혜소국사의 비. 높이 비신 227cm, 너비 127cm.
현재 귀부(龜趺)·비신(碑身)·이수(首)가 분리된 채 보관되어 있다. 귀부의 머리, 꼬리부분, 4개의 발은
모두 파상무늬[波狀紋]로 장식되었으며 등에는 육각형의 귀갑무늬가 새겨져 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좌(碑座)에는 복련(伏蓮)이 돌려져 있다. 비신은 중간부분이 절단되는 등 파손이
심하지만 글자는 선명한 편이며, 양 옆면에는 큼직한 보주(寶珠)를 사이에 두고 유희하는 쌍룡이 새겨져
있다. 상단에는 '증시혜소국사비명'(贈諡慧炤國師碑銘)이라는 제액(題額)이 새겨져 있고, 하단에는
혜소국사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는데 비문의 내용은 김현(金顯)이 짓고 글씨는 민상제(閔賞濟)가
썼다. 이수에는 운룡(雲龍)이 양각되어 있는데 용의 비늘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비는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와 형태가 매우 유사하며, 비문에 의해 1060년(문종 14)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념작이다.












봉업사 석불입상(보물983호)

대웅전 앞에 조성되어 있는 석불입상으로 원래 죽산산성 아래 관음당이라는 마을에 있던것을 훼손이
심하여 이곳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아마도 고려시대에 크게 번창하였던 봉업사지에 모셔졌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화강암 1매로 대좌없이 광배와 함께 조성되었습니다.
불상 높이는 157cm, 어깨 너비가 50cm, 광배의 높이는 195cm입니다. 민머리 위에 큼직한 육계가 있고
이목구비는 마멸이 심해 전체적인 인상은 잘 드러나지 않고 있지만, 둥그랗고 도톰한 얼굴은 양 볼이나
턱에 부피감이 보이는 등 대체로 원만한 상호(相好)입니다. 양쪽 귀는 길게 표현되어 어깨에 닿을 듯한데
목의 삼도(三道)와 잘 어울려 위엄이 보입니다. 불의(佛衣)는 통견으로 배 부근까지 여러 겹의 둥근 선을
그리면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이 통일신라 시대의 분위기를 풍기지만, 고려시대 초기에 유행하던 지방 양식의 특징도
보이기도 합니다.







보지는 못했지만...

오불회 괘불탱(七長寺五佛會掛佛幀)(국보296호)

칠장사에 있는 오불회 괘불탱은 국내에서 세번째로 오래된 괘불로서 승려 법형(法 )이 그렸다.
이 괘불탱은 가로 4.04m 세로 6.56m 크기의 화폭에, 미륵이 부처가 된 후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연 법회인 용화회(龍華會)의 광경을 그린 것이다. 
미륵보살을 주존으로 모신 것이 아니라 비로자나 삼존불(毘盧舍那三尊佛: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여러 부처 보살 호법신중(護法神衆)이 그려져 있어 특이한 예에 속한다.
이 괘불탱은 짜임새 있는 화면 구성법과 생동감 있는 필법, 많은 도상들이 함께 등장한 군집도 형
식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불화 연구의 중요한 기준 작품으로 평가된다.





칠장사 삼불회 괘불탱(七長寺三佛會掛佛幀)(보물1256호)
이 괘불탱은 가로 4.54m 세로 6.28m의 화폭에 부처가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을 때의
모임인 영산회(靈山會)를 그린 것이다. 화기(畵記)에 의하면 대영산회(大靈山會) 괘불 1부와
미타회(彌陀會) 괘불 1부, 현왕탱화 1부 등과 함께 승려 탄명(坦明)이 부모를 위하여 조성하
였다고 한다. 승장(勝藏), 인혜(印惠), 창상(敞尙), 현책(玄冊), 영안(玲眼) 등의 승려에 의해
그려진 이 탱화는 전체적으로 짙은 녹색과 홍색, 청색 위주로 색을 칠하였고 간간이 금박이
사용되어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조선 후기에 유행한 이러한 구성은 큰 전각에 봉안되는 삼세불을 한 화면에 나타내고 있어 조선
후기 불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마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