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어키 여행(7/29)_3일차(3/5)_에페스유적지(1/2) ♥ 해외여행_아시아



이곳은 기원전 11세기에 아르테미스 신전을 중심으로 건설된 고대 도시국가의 유적지이다.
에게해 연안의 도시로 무역과 비옥한 토지를 기반으로 발전했으나 전염병이 돌고 항구가 묻히자
지금의 자리로 이동했다고 전한다.
이 도시는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을 때가 최고의 전성기라고 전해온다.

터키 이즈미르의 남서쪽 약 50km 지점으로, 양항(良港)을 끼고 상업 중심지로 발전했다.
BC 620년경 이곳에 세워진 아르테미스신전(神殿)은 소아시아에서 그리스에 이르는 지역에서 많은
순례자를 끌어모았다. 이곳은 BC 7세기∼BC 6세기가 최성기(最盛期)로서, BC 6세기 후반에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부터 쇠퇴하기 시작, 페르시아전쟁으로 해방이 된 뒤에는 그 세력을 떨치지 못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대왕 원정 뒤 헬레니즘시대에 이르러 경이롭게 부흥하였다. 1세기 성 바울로는
이곳에 그리스도교를 전하였으며(54, 55∼57), 또한 로마에서 이 지방 신자에게 서한을 보내기도 하였다.
오늘날 이 도시의 폐허에서는 수많은 유적이 발굴된다.


이상하게 유적지에 설명한는 안내판이 전혀없다.
터어키 말로된 게시판 조차도 보이지 않은데, 입구에 삼성에서 제공한 한글로 된
안내판이 보인다.



바리우스(Varius)의 대욕장
1~2세기경 헬레니즘 시대에 만들어진 목욕탕이란다.
아직도 발굴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는데 열탕, 온탕, 냉탕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고 하니,
현재의 욕실의 기능을 다 갖춘 모양이다.



당시 기독교도들이 사용했다는 암호가 석재 여기저기에
새겨져 있단다.





바실리카...
로마시대의 법정이나 상업거래소, 집회장소로 사용된 공공건물이며
1세기 아우구스티누스 황제때 만들어졌으며 길이가 165m나 되었다고 한다.



오데온 Odeon
현재는 지붕이 파괴되어 없어졌지만 원래는 지붕이 있었으며 AD150년 경에 세웠잔다.
연국이나 음악회가 열렸던 소극장으로 22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약1,500명 정도를
수욜할 수 있단다.







이오니아식과 코린트식 열주
각 건축물의 건축 연대가 다르기 때문에 여러가지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데
왼쪽이 이오니아식이고 오른쪽이 코린트식이다



프리타레이온
에페소의 시청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회의가 열리거나 귀빈들을 접견했으며,
에페소를 지키는 꺼지지 않는 신성한 불을 이 건물의 중앙에 보관했던 것이다.
두점의 아르테미스 여신상이 발견되어 에베소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고 한다.




구멍에 횟불을 꽂아 배를 인도 했단다.





양쪽에 2개의 부조상이 있는데
오늘날의 약국과 병원을 나타내는 상징이란다.
여기에 약국과 병원이 있었다는 증거...



메미우스 기념묘
이 도시에 공헌했던 인물로 추측되느 인물이라네
로마의독재관 술라의 손자란다.





도미티아누스 광장



도티아누 신전



폴리오의 샘
상점으로 사용되었다나...





분수대



승리의 여신 '니케'의 부조







헤라클레스의 문
4세기에 어디서인가에서 운반해 와서 지었단다.
6개기둥의 2층의 개선문이 이었으나 현재는 2개의 기둥만 남아 있다.
헤라크레스가 그의 상징인 사자의 가죽을 지닌 모습이 부조되어 있다.
마차를 통과하지 못하게 하고 하층민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네...






도미티아누스 광장방면....



미끌어지지 말라고
대리석에 이렇게 홈을 냈단다.
2천년전에....



트라야누스의 샘
2세기초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바친 샘
원래는 9m정도의 높이 였단다. 물이 마르는 경우가 없는 샘이었는데
어느날 황제인가 클레오파트라인가가 방문을 하기로 했었단다.
때마침 물이 말라 버려 고심하던 관리인이 포도주로 채웠는데
그 앞길이 붉은 색으로 물이 들었는데 오늘날의 '레드카펫'의 기원이라는 설이.........



2000년전 호화주택들....
당시에 주택앞길을 정교한 모자이크 타일로 장식을 했다니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셀시우스 도서관으로 향하는 크레테스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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