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산 미황사_대웅보전(보물947호), 응진당(보물1183호), 부도군 ♣ 국내여행_유적지 찾아서

미황사 부도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란다.








달마산이 품은 미황사
정말 명당의 자리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이다.
749년(
경덕왕 8)에 의조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사적기에 따르면 금인이 인도에서 돌배를 타고 가져온
불상경전금강산에 모시려고 하였으나 이미 많은 절이 있어 되돌아가던 중 이곳이 인연의 땅임을 알고,
의조에게
경전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멈추는 곳에 절을 짓고 봉안하라 이렀다고 한다.

이에 의조는 금인의 말대로
경전불상을 소에 싣고 가다가 소가 크게 울고 누웠다가 일어난 곳에 통교사를
창건하고 마지막 멈춘 곳에 미황사를 지었는데, 소의 울음소리가 지극히 아름다워 ‘미()’자와 금인을 상징한
‘황()’자를 쓴 것이라 한다.

그뒤 수백년 동안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는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절이 소실되자 1598년에 만선이
중건하였고, 1660년(
현종 1) 성간이 중창하였으며 1754년(영조 30)에는 덕수가 중창하였다.
한국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사찰로 경내에는 대웅전(보물 947), 응진당(보물 1183)과 명부전, 달마전, 칠성각,
만하당, 세심당 등이 있다. 






대웅보전(보물947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다포식 집으로, 뒤편의 산자락과 잘 어울려 절 전체에 안정감을 주는 중심법당이다.
1982년에 보수할 때 법당중수상량문(1754년 작성)이 적힌 대들보가 발견되었는데 그에 따르면 대웅보전은 응진전과
함께 1751년에 중수되었다.

막돌을 쌓아올린 높직한 기단 위에 연꽃잎을 새긴 둥근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이 있는 둥근 기둥을 세웠다. 특히 주춧돌에
다른 데서 보기 드물게 게나 거북 등 바다생물이 새겨져 있어서 창건설화와 관련된 상상력을 자극한다. 포작은 안으로 4출목,
밖으로 3출목으로 화려하게 짜여 조선 중후기 다포집 양식의 특징을 잘 보인다.


건물 외부는 비바람에 닦여서 단청이 다 지워지고 나뭇결이 보드랍게 살아 따뜻한 느낌을 주며 정면 기둥 위의 용머리 장식 등
조각솜씨가 돋보인다. 법당 안에는 가운데 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후불탱화가 걸려 있으며 천장 우물반자에 범서로 ‘옴마니반메훔’
자가 적혀 있다. 그 주변은 학이나 모란 그림으로 장식되었고 그밖에도 벽 위나 천장에 제불도와 먹선으로 그린 나한도 등 눈길을
끌 만한 그림들이 있다.













응진당(보물1183호)

이 건물은 일명 나한전이라고 하는데 조선 영조 27년(1751)에 지은 것이다.
불교의 수행자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를 가리켜 응진 또는 아라한이라고 하며, 이를 줄여서
나한이라고도 부르는데, 응진전에는 보통 십육나한이나 오백나한을 모신다. 이 건물은 내부 벽면에 그림으로
십육나한을 모시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의 다포식 건물로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역시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민흘림의 두리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으로 건물의 규모에 비하여 출목수가 많은 편이며,
외부로 뻗은 살미 하단부에 초각이 있고, 기둥머리에 장식이 가미되는 등 조선 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내부의 포벽에 그려져 있는 여래상은 18세기의 작풍을 엿볼 수 있게 하여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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