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_05] 수락산 水落山(1/4)_청풍정,노강서원,석림사_'09.3.21 山 산행일지_서울



수락산 水落山

서울 주위에 좋은 산들이 많지만 수락산은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 찾아가도
나름대로의 특색을 보여주는 산이다. 아기자기한 암봉들은 저 멀리 설악산이나
월출산을 찾아간 듯한 느낌도 안겨준다.

서울시와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에 솟은 수락산(637.7m)에는 금류, 은류, 옥류폭포와
신라 때 지은 흥국사, 조선조 때 지어진 내원사, 석림사, 궤산정 등 명소가 산재해 있다.

수락산 남쪽에는 불암산이 솟아있고 서쪽으로 마주 보이는 곳에는 도봉산이 의젓하게 자리잡고 있다.
수락산의 여러 등산코스 중 서울시민들이 선호하는 코스는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 앞에서 시작하여
학림사와 용굴암을 경유하는 코스이다.

불암산과 잇닿은 쪽의 능선은 봄철이면 철쭉이 아름답다. 산길이 험하지 않고 비교적 교통이 편리해서
휴일이면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전설

수락산의 이름이 생긴 유래 중에는 아들을 찾는 父情이 산 이름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옛날 한 사냥꾼이 아들 수락을 데리고 지금의 수락산으로 호랑이 사냥을 왔다
그런데 갑자기 큰 소낙비가 쏟아져 사냥꾼 부자는 비를 피하여 큰 바위 밑에서 비가 멎기를
기다리면서 잠이 들었다
그때 호랑익 나타나 잠자고 있던 수락을 물어가 버렸다. 한참 뒤 잠에서 깨어난 사냥꾼은 아들
수락을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초조해진 아버지는 아들 수락을 찾아 헤메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바위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뒤로 비만 오면 산에서 '수락아! 수락아!' 하는 소리가 들려 사람들이 산 이름을 수락산이라 하였다고 하네..

 

   = 등산코스: 장암역=>노강서원=>깔딱고개=>정상 =>철모바위=>하강바위=>치마바위=>
                  벽운동계곡=>덕성여대 생활관=>수락산역
   = 소요시간: 4.5시간
   = 와이프랑 둘이서......







집을 나설때는 안개를 느끼지 못했는데, 장암역에서 내려 산을 바라보니
꽤 진하다. 뿌옇다. 와이프랑 몇 년만에 산행을 하는데
햇빛이 "빵끗"해 줘야 할텐데 고민이네. 山에 오르는 기쁨을 느끼게 해 줘야 할텓데......
오늘 3월 날씨치고는 80여년만에 최고 기온이란다.
22가 넘은듯 바람이 차갑지가 않았다.


장암역에서 바라본 수락산 모습




장암역 출발 부근은 아직 개발이 덜 된듯
허름한 몇 집의 상점과 산을 알리는 입간판 조차 찾아 볼 수 가 없다.
수락산역쪽이나 유원지부근은 꽤 정비가 된것 같은데...
김밥, 홍어, 닭발, 막걸리를 파는데 어찌나 군침이 돌던지




청풍정(淸風亭) 터

청풍정은 노강서원(鷺江書院) 앞에 있는 정자로 현재는 주춧돌만 남아 있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이 삼각산 중흥사(重興寺)에서 공부하다가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불사르고 사육신의 시신을 거둔 후에 처음에는 청풍정에 숨었다가
폭천정사(瀑泉精舍)로 옮겨 은둔하였다고 한다.

청풍정은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선생이 매월당 김시습을 추모하기 위해 영당(影堂)을 짓고
그 앞에 세운 정자로 제자들과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주추의 크기는 높이 90㎝, 아래 폭 60㎝,
위 폭 38㎝ 정도이며 모두 네 개로 되어 있는데 주추간의 거리는 가로 2.2m, 세로 2.4m인 것으로
보아 정자의 평면적은 1.6평 정도로 추측된다.
정자 아래쪽 계곡 암면에는 수락동천(水落洞川)이라는 매월당의 친필이 남아 있다. 이 글씨는
매월당이 전국을 유랑 할 즈음 이 곳 수락산에 머물고 있을 때 남겨 놓은 친필이라고 전해진다.






노강서원鷺江書院

종 목 시도기념물 제41호 (의정부시)
지 정 일 1977.10.13
소 재 지 경기 의정부시 장암동 산 146-1

조선 숙종 때 문신인 박태보(1654∼1689)의 학조선 숙종 때 문신인 박태보(1654∼1689)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박태보는 호남 암행어사, 파주 목사 등의 벼슬을 역임하였고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심한 고문을 받고 진도로 유배가는 도중 죽었다. 학문에도 깊고 성품도 강직한 분으로 알려졌으며
죽은 뒤에 영의정에 임명되었다.


숙종 21년(1695)에 세운 이 서원은 숙종 27년(1701)에 국가에서 인정한 사액서원으로 ‘노강’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원래는 서울 노량진에 세웠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고 1968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폐쇄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경내 건물로는 사당, 동재·서재, 고직사 등과 출입문이 있으며 교육장소로 사용되는 강당은 따로 두지 않았다. 사당은
박태보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건물로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다. 동·서재는 온돌방으로 꾸며 유생들이 공부하면서
기거하는 건물이다.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석림사石林寺

1671년(조선 현종 12) 석현()과 그의 제자 치흠()이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석림암()이라고 불렀고, 창건 직후에 유담()이 삼소각()을 세웠다.
숙종(재위:1674∼1720) 때 문신인
박태보()가 김시습()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중창하였다.
1698년(숙종 24)에는 삼소각을 중건하였으며, 1745년(영조 21) 홍수로 피해를 입은 뒤에도 바로 중건하였다.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탄 것을 1960년부터
비구니상인()이 제자인 보각()과 함께 중창을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극락보전칠성각·독성각·적묵당·요사채2동이 있으며, 이 중 극락보전에는
아미타삼존불을 비롯하여 후불탱화와 신중탱화 등이 있다. 극락보전 앞에는 1969년 상인이 부처의 사리를
구해 모셔 둔 탑이 있다.

좀 특이한 사찰이다.
일주문이며, 대웅전 등이 한글로 기록이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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